이창원 감독(오른쪽)은 새롭게 창단한 동명대 축구부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대구예술대에서 자신이 지도했던 16명의 선수를 데려왔다. |
부산 동명대 축구부가 창단 후 전국대회 우승까지 걸린 기간이다. 드라마로 만들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졌다.
지난 2월에 열렸던 한산대첩기 제60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 결승에서 동명대가 아주대를 1-0으로 꺾고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동명대 축구부가 작년 12월 말에 창단된 팀이라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동명대는 과거 포철고를 이끌고 무수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황희찬(울버햄튼)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이창원 감독이 이끌고 있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할 건 동명대는 지난해까지 대구예술대를 지휘했던 이창원 감독이 축구부 해체 후 갈 곳 없어진 제자들과 함께 건너와 꾸리게 된 팀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동명대가 보유한 49명의 선수단 가운데 주장 박겸을 포함한 16명의 선수들이 대구예술대에서 합류했다.
이창원 감독은 대한축구협회(KFA) 홈페이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구예술대 축구부가 해체된 후 새롭게 창단될 동명대 축구부와의 접촉이 지인을 통해 이뤄졌다. 사실 학교 입장에선 내가 감독직을 수락하면 그만이었을 거다. 하지만 난 대구예술대 축구부 해체로 갈 곳을 잃은 제자들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선수들이 나를 믿고 따라 와줬고 곧바로 전국대회에서 성과를 낼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물론 대구예술대에서부터 이창원 감독과 함께 했던 선수들은 이창원 감독의 축구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대구예술대 출신 선수 이외에도 동명대에 새롭게 입학하는 선수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간의 호흡을 새로 맞춰야 한다는 중책도 존재했다. 이렇듯 여러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동명대에서 새 출발에 나선 이창원 감독과 제자들을 KFA 홈페이지가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구예술대 축구부 해체와 동명대 축구부의 탄생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2021년 이창원 감독이 그동안 대학 무대에서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대구예술대 지휘봉을 잡고 이듬해 추계전국대회 정상에 등극한 후로 대구예술대는 꽃길만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 사정상 2023년 축구부를 향한 재정 지원이 절반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아예 끊겼다. 결국 대구예술대 축구부는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다행히 포철고와 대구예술대에서 수많은 성과를 쌓은 이창원 감독을 향한 러브콜은 많았다. 그 가운데서 이창원 감독이 고려했던 조건은 높은 연봉, 팀의 수상 경력 등이 아니었다. 바로 대구예술대에서 함께 했던 코치와 선수단을 흡수해줄 수 있는 곳. 이창원 감독이 원했던 건 그것 하나뿐이었고, 새롭게 탄생한 동명대와 이해관계가 맞아 그는 낯선 부산으로 향했다.
이창원 감독에게도 염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작년 대구예술대에서 2,3학년이었던 선수들은 프로 진출에 성공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편입을 통해 학년을 그대로 이어가 동명대에서 활약이 가능했다. 문제는 작년 대구예술대에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다. 이들은 교과 과정상 편입이 불가능해 올해 신입생으로 재입학해야 했고, 그렇게 되면 1년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이창원 감독과 선수단 간 ‘믿음’ 덕분에 대구예술대 출신 16명의 선수 중 12명이 재입학으로 동명대에 합류했다.
이창원 감독은 “작년에 대구예술대에서 2,3학년이었던 자원들 가운데 3명은 각각 울산HD, 대구FC, FC안양 입단에 성공했다. 나머지 친구들도 편입이 가능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1학년들은 붕 뜰 수밖에 없었다”며 “1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점을 감수하고 이들을 데려왔다가 성적을 못 내면 오히려 난감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도 대구예술대에서 자퇴서를 냈고 어차피 누군가가 품어야 한다면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대구예술대에서 동명대로 재입학한 한현서는 “처음에 대구예술대 축구부가 해체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감독님과 코치님을 믿고 따라간다면 새로운 팀에서 나 역시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다른 팀에 가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다.
동명대에서 이창원 감독을 보좌하고 있는 이승준 코치 역시 대구예술대에서 함께 했던 인물이다. 이승준 코치는 “대구예술대 축구부 해체 후 다른 팀을 가려는 마음은 아예 없었다. 그저 이창원 감독님을 따라 가고 싶었다”며 “나도 선수 시절을 보낸 적 있지만 이전까지의 내 축구 생활이 아쉬울 정도로 이창원 감독님께 축구를 처음 배웠다고 느낀다. 때문에 동명대에서도 감독님 밑에서 새 성과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지독한 훈련량만이 살 길이었다
대구예술대에서 넘어온 선수들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쟁취할 수는 없다. 당연히 대구예술대 출신이 아닌 33명의 신입생들에게도 빠른 적응이 필요했다. 여기서 이창원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대구예술대 출신 선수들과 아닌 선수들끼리의 호흡을 얼마나 빠르게 맞추느냐는 것이었다. 전국대회 개막 전까지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한 달 반에 불과했고, 돌파구는 훈련량이었다.
이창원 감독은 “동명대 축구부를 꾸리면서 대구예술대 출신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끼리 발을 다시 맞춰야 했다. 그저 많은 훈련으로 이를 극복했다”며 “하루에 4쿼터씩 연습 경기를 나눠 모든 선수들이 한 번씩은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방식을 설정했다. 신기하게도 짧은 기간 안에 시너지가 나더라”고 답했다.
이 덕분인지 동명대의 우승 조짐은 대회 돌입 전부터 보였다. 동명대는 연습경기에서 고교 무대 최강자로 알려진 보인고와 신평고를 각각 5-0, 3-0으로 물리쳤다. 이어 오범석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파주시민축구단(K3)과는 비겼으며, 부산교통공사(K3)에는 승리를 거뒀다. 연습경기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오범석 감독은 이창원 감독에게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동명대는 연습경기 결과가 단순히 운이 아니었음을 대회 실전에서 증명했다.
이창원 감독은 “물론 연습경기지만 팀의 퍼포먼스가 굉장히 좋아 나도 놀랬다. 오범석 감독이 내게 신생팀이 아닌 것 같다는 얘기도 건넸다”면서도 “전국대회에 나가서는 처음부터 모든 게 잘 전개됐던 건 아니다. 처음 두 경기는 결과와 별개로 답답한 면이 많았는데 세 번째 경기에서의 역전승을 바탕으로 팀이 빠르게 본 모습을 되찾았다”고 설명했다.
한산대첩기 결승에서 결승골을 기록했던 안현희 역시 대구예술대 출신이다. 그는 “우리는 훈련량으로 승부 보는 팀이었다. 감독님께서 추구하시는 축구를 수행하기 위해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전국대회 우승을 각오했던 건 아니었는데 훈련을 하면 할수록 결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현실이 돼서 꿈만 같았다”고 돌아봤다.
동명대의 날개짓은 이제 시작이다
이들의 날개짓은 전국대회 우승에서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올해 U리그2 10권역에 배정된 동명대는 전국대회 우승의 기세를 이어가 U리그1 승격까지 바라본다. 이승준 코치는 “우리는 승격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승격할 거다. 우리 선수들 모두가 목표했던 수도권 대학에 가지 못하는 등 아픔을 한 번씩 겪었다. 나와 감독님이 스승보다 부모의 입장에서 선수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다. 다 같이 뭉쳐서 더 높은 곳으로 쭉쭉 뻗어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창원 감독은 “U리그1 승격을 포함해 아직 이뤄야할 것들이 많다. 다만 앞으로의 목표를 우승이라고 못 박고 싶지는 않다”며 “다른 팀들이 우리를 만났을 때 어려운 상대라는 인식이 들도록 만들고 싶다. 지난 전국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증명했지만 그 인식을 더욱 공고히 다져 대학 무대 강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